문영일
  제2의 「콜론 보고서」와 「팔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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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콜론 보고서팔리 보고서

 

1콜론 보고서(Colon Report)[5.16 군사혁명]

 

195911, 미국 상원 분과위원회에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이라는 이름의 콜론 보고서대한정책권고서용으로 제출되었다. 당시(한국 자유당 말기) 한국안보전략에 능통했던 (그러나 좌편향이던) 스칼라피노 교수를 비롯한 한국통 전문가들에 의하여 작성된 이 보고서의 요점은, ‘한국 실정은, 미국원조 없이는 한국경제는 곧 붕괴할 것이고, 한국에 민주주의가 껍질만 남은 것도 기적이고, 부의 양극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 제일주의의 만연 등, ‘쿠데타 가능성은 희박하나 그러나 필연적이라는 다소 모호하나 암시적으로, 군사혁명의 긴박성을 공공연히 강조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군사혁명의 가능성을 분석하여 가로되, ‘한국에서는 가난한 집안의 유능한 재원들이 학자금 때문에 대학교육이 국비인 사관학교에 들어가 지식 프롤레타리아트 성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청년장교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특권적 관리와 정치가에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폭발할 우려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군사지배가 정당을 대체하는 그런 사태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미국 일부 정계의 한국군사쿠데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콜론 보고서는 당시 청년지식인들에게 인기가 있던 한국의 성인교양지 [思想界]601월부터 소개되었는데, 특히 군대내 소장파 장교들 중에서도 특히 1955년부터 매년 200여명 식 임관하고 있는 4년제 정규육사출신 장교들 등 - 에게 어떤 역할을 자각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1팔리 보고서와 케네디 정부 대응

콜론 보고서가 나온 그다음 해, 특히 4.19이후 7.29총선을 지나면서 한국의 정치 추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해 오던 미국 행정부는, 19601122일에한국의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 사회주의 혁명 가능성을 우려하는 판단이 담긴 것이었다. , 한국에서 향후 몇 년 동안 리더십 변화와 세력재편이 일어날 것인데, 이 경우 현재와 같은 보수정당 우위가 무너지고 사회주의 세력의 힘이 강화될 것이라고, 당시 장면정권과 한국정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한국의 상황 612]이라는 제목의 팔리 보고서- 국제협력단(ICA) 한국지부의 기술자문 역인 휴 팔리(Hugh Dfarley)가 미 화이트하우스에 제출한 한국정세전망보고서- 가 그 해 3월에 나왔는데 거기에는, ‘장면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하다, 그래서 지금 한국은 병든 사회로서 이 정권이 4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인데, 내버려 두면 공산혁명이나 그 비슷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지 모른다, 때문에 이들을 방지하려면 지금 바로 미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미 국무부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케네디 대통령은, CIA(중앙정보국)에 주의를 환기함과 동시에 NSC(국가안보위원회)에 새로운 대한정책을 주문하였고, 국가안보위원회는 5월초에 대한정책전담부서를 만들어 이제 막 대응전략을 마련하려는 때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5.16 군사혁명의 기원 - 1

화랑대의 육군사관생도들은 일조점호로 매일 새벽 6, 연병장에 모여 모두 함께 힘차게 [육군사관생도의 신조]를 부르짖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나는 국리민복을 위해서 언제든지 생명을 바친다.

2. 나는 부여된 임무와 책임에 대해서 사력을 다하여 기필코 완수한 다.

3. 나는 위기를 만날 때마다 육사의 전통과 명예를 살려 남아다운 결 단을 내린다.

4. 나는 억강부약(抑强扶弱)하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길을 택한다.

5. 나는 소아를 버리고 대의를 위해 싸운다.

6. 나는 의리와 지조를 끝까지 지킨다.

7. 나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실천제일주의로서 나의 길을 내가 개 척한다.

8. 나는 검박하고 항상 부하의 복지를 위해 노력한다.

9. 나는 전장에서 승리를 위해 항상 전진한다.

10. 나는 국민과 부하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하며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는 아량과 인내력을 갖는다.

 

더구나 이들은 이승만 말기정권과 기성 장교단의 부정부패에 대하여 불신과 반발로 일상의 생도생활에서 '파사현정'의 의기를 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생도들은 당시 군의 부정부패를 절감하고 분노를 느끼며 기성장교세대를 비판하며 척결을 다짐하였다. 그리고는 그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생도끼리는 '우리는 부정부패한 기성세대가 아니고, 파사현정하는 4년제 정규육사생도'라는 사실을 내외로 더욱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당시 반정부적이던 잡지 '思想界'를 탐독하면서 1956년 선거에는 이승만 아닌 야당후보에 표를 던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임관하면 군대를 반듯이 개혁할 것이라고 마음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부정부패가 극심했던 1955- 이때가 바로 단기4288년으로서 그 유명한 쌍팔년에 좋았지하는 바로 그 부정부패 최고조의 해였다 - 부터 제1기생 졸업과 동시 임관을 시작으로 최전방부대 전투병과의 소대장 근무부터 시작하였다. 해마다 대략 180여명(250명 입학)이 전방 20개 사단에 각 8~10명씩 고르게 배치되어 가면서 파사현정의 기운을 그때마다 새롭게 해 주었다.

이들은 전방부대소대장들로서 부임과 동시에 나름대로의 부정부패추방과 개혁을 시도하였다. 원리원칙에 입각한 근무와 엄격한 교육훈련지도는 물론 보급투쟁 - 자기 소대 자기부대만이라도 쌀과 부식을 비롯하여 생필품은 물론 기호품인 담배와 건빵에 이르기까지 정량수령 투쟁 - 도 불사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밑바닥으로부터의 개혁바람이 드디어는 정군개혁의 풍조가 되고 대세가 됨으로서, 드디어 19571월을 기하여,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요 4.19혁명당시 '군의 중립'을 선언하게 되는 송요찬장군은, "오늘 이 시간부로 각부대의 후생사업(숯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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