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문영일
  추억 속의 국방야사(國防野史)
  

 

추억 속의 국방야사(國防野史) - 1(2)

 왜정말기시대 얘기 - 1

필자는 나서 10년간 왜정 말기시대에 살았다. 광복되던 그해는 초등학교 4학년생이었다. 우리 학교는 당시 동래 군청이 있는 읍내 학교였건만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3~40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서서 발을 씻을 수 있는 아시아라이바’(발 씻는 곳)가 시설되어 있었다. 당시 부산·동래는 겨울에 영하의 날씨가 있긴 하였으나 0`C 이하가 드물었고 한겨울이라 해도 미나리깡에 살어름이 얼 정도였다. 그러기에 어려웠던 그 시절 대부분 학생들은 거의 44철 맨발로 학교에 다니기도 하였다.

공일(휴일)아침이면 동네 또래 학생 아이들이 모여 남쪽을 향해 서 있는 이웃집 담벼락에 일렬로 붙어서서 아침 햇빛을 쬐며 숨을 쉬면 입에서 김이 나오는 것이 보이는데, 이를 히노다바꼬’(햇빛담배)라 하면서 어른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면서 당시 이슈 즉 유언비어를 퍼트리며(?) 즐거워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19454월경, 왜군(倭軍)이 본토까지 후퇴해 들어올 즈음 뜻밖에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사망하여 음모설이 떠돌았다. 그즈음 히노다바꼬에서 이슈는 일본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기로 루스벨트를 암살했다더라였다. 과연 당시 소학생 머리들에서 오늘날의 드론을 상상하였을까? 1 - ()

  

 추억 속의 국방야사(國防野史) - 2(2)

 

 왜(倭政)말기시대 얘기 2

일제(日帝)가 소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1942년이 되자 우리 학교도 완전히 전시·왜색 일변도가 되었다. 선생의 2/3가 일본사람이 되었고, 우리 담임도 일본여자 선생이었는데 일본말 하기를 강제하였다. 우리말을 하면 금방 그 자리에서 의자 들고 서 있는 벌을 주었거니와 월말에 가서 벌점카드를 계산하여 추가로 남아서 서는 벌을 주었다.

교장선생은 일본군 현역 육군대위가 긴 칼(軍刀, 왕 하사품)을 차고 일본군 육사 출신 교단에 서서 매일 아침조회를 집행하였다. 일본 동경 황궁을 향해 90도 큰절하고, ‘신민선서’(臣民宣誓)를 외웠으며 그러고는 국민보건체조를 했다.

그런데 이 체조 하나만은 그때부터 이 나이까지 하루도 안 빼고 해서 이 정도 건강에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교장은 육사출신답게 또 교장선생답게 종종 일본에서 학교는 사범학교와 육군사관학교가 제일이라 하였다. 사실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그러하였다. 우연(?)하게도 본인이 부산사범학교를 나오고 육사를 나왔기에 그 교장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1945년이 되자 공습경보(주로 경계경보)가 자주 울렸다. 그때마다 우리는 깔고 앉았던 방석 끝을 조여 머리에 쓰고, 배급받은 비스켓 한 봉지를 들고 학교 뒤 언덕에 파 놓은 방공호(교통호)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하늘을 주시하면 저 높은 상공으로 참새 새끼 크기의 B-29가 빤짝 빤짝거리며 북쪽으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떤 때는 수영비행장에서 일본전투기가 뜨기도 하였으나 금방 꼬리를 내렸다. 2-

            

 

[인쇄하기] 2020-05-13 18: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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