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14기생이 육사를 졸업하고 이학사(理學士) 학위를 받으면서 육군소위로 임관된 지 만 50년이 흘렀다. 결코 짧지 않은 반세기의 세월. 4년간의 재학기간까지 합치면 우리 179명의 동기생은 54년간 한솥밥을 먹으면서, 혹은 같은 군문에서, 혹은 일찍 군복을 벗고 일반사회로 진출하여 학계·문화계·교육계·정계·관계·산업계, 심지어 목사가 되어 종교계까지 널리 활동무대를 넓혀 나라와 사회에 나름대로 헌신하고 봉사해 왔다고 자부한다.

 

  그 세월 동안 정말 다양하고 풍부한 여러 가지 경험과 풍상을 겪으면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도 많을 것이고, 경륜을 쌓고 고난을 헤쳐가면서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거나 좌절과 회한의 눈물을 흘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의 고비고비에서 터득한 지혜와 경험을 글로 써서 남기는 일은 우리 자신들의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도 있고 한 시대의 거울로서 자손들이나 후진들에게 교훈을 주는 뜻도 있을 것이다.

 

  문장 구성의 기교나 표현의 우열이 문제될 것이 없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 본연의 욕구 중 하나이지만 이제 그런 속기를 누르고 담담하고 진솔하게 붓 가는대로 적어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이 문집을 기획한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기록에 충실한 민족으로, 세계에 유례가 드문 고려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등 위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근대에 들어와 격동기를 겪으며 기록문화가 쇠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이 작으나마 한 시대를 살다 간 육사인들의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일까.

 

  물론 기록만이 아니고 그 동안 시나 수필, 소설 등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 동기생들의 작품도 있고 우리의 관심사를 다룬 2편의 논문도 함께 수록하지만 이것도 넓은 의미로 보면 격동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들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1996년 동기생들의 동호인 모임인 수필동우회가 ‘밤 세톨’이라는 수필집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2000년 일사회 문집(1)이 발간되었고 이제 졸업 및 임관 50주년을 기념하여 문집(2)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앞에서 밝힌 거창한 기획의도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런대로 아담한 기념문집이 된 것이 대견스럽다. 시 8편, 산문 27편, 단편소설 2편, 논문 2편 등 모두 39편의 글이 실렸고 22명의 동기생과 5명의 가족이 참여하였음을 밝히며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

 

  우리 동기생의 평균 연령은 만 73.5세 쯤 될 것이니 고희를 넘어 7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됐다. 공자는 인생 70을 從心所欲 不踰矩(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라 했지만 그건 문자 그대로 공자님 말씀이고 우리 범인들은 그런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 다만 노욕을 버리고 품위 있게, 아름답게 여생을 보내도록 힘쓸 뿐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10년, 임관 60주년에는 몇 명이 더 먼저 갈지 모르지만 남은 사람들이 이 문집보다 더 멋진 제3집을 또 만들게 되기를 염원한다.